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

🔖 구걸

결국 그들을 모두 용서하게 됐지만 도저히 나 자신은 용서가 되지 않았다. 소멸할 존재라는 자각은 가끔 사람을 이상하고 일터에 부적합한 인간으로 자유 기업의 노예이기를 거부하는 불쾌한 인간으로 만든다.


🔖 면도날 같은 낮, 쥐들이 들끓는 밤

내 삶은 술집과 도서관으로 양분돼 있었다. 그 외에는 일상을 어떻게 꾸려 갔는지 모르겠다. 그쪽으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. 책이나 술이 있으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. 바보들은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법이다.

...

달이 거기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기억이 난다. 하도 그럴싸해 그 책을 읽고 나니 달이 거기 없다는 그의 주장이 믿어졌다. 달이 거기 없다면 하루 여덟 시간의 노동을 감내할 청년이 누가 있겠나? 뭐가 아쉬워서?

그런데 문학보다 문학 평론가라는 자들이 더 좋았다. 참으로 밥맛 떨어지는 그자들은 세련된 언어를 동원해 아름다운 방식으로 다른 평론가와 작가를 등신 취급했고 나는 그 덕에 기운이 났다.


🔖 지옥은 닫힌 문이다.

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없다.


(같은 책인데 어떤 시에서는)

🔖 여보게, 공기와 빛과 시간과 공간은 창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아. 새로운 변명거리를 찾아낼 만큼 살날이 길다면 또 모르지만.

(하지만 다른 시에서는)

🔖 거리에서는 글을 쓸 수 없었다. 방 하나, 문 하나, 벽들을 갖추는 게 몹시 중요했다.


🔖 불씨

하급 노동자로 살 때는 단 한 순간도 분노가 가신 적 없었다. 늘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리고 어지럽고 미칠 것 같았다. 왜 내 삶을 스스로 도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. 지루하고 몰지각한 노동뿐 아니라 괴로운 기색 하나 없고 심지어 만족한 듯 보이는 많은 동료들 때문에 환장할 지경이었다.

노동자들은 굴복했다. 노동은 그들을 무용지물로 파괴했고 그들은 단물을 빨리고 내쳐졌다.

나는 매 순간 분노했다. 매 순간 내 시간은 도륙당했고 아무것도 단조로움을 달래 주지 않았다.

자살을 생각했다. 한 줌의 여가 시간을 술로 보냈다. 긴 세월 노동을 했다.

최악의 여자들과 같이 살았고 노동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은 그녀들 손에 죽어 갔다.

나는 죽어 가고 있었다. 내면의 무엇이 속삭였다. 저지르라고, 죽으라고, 그들처럼 되라고, 받아들이라고.

내면의 또다른 무엇이 속삭였다. 안 돼 가장 작은 조각을 살려 봐. 많이도 필요 없어, 그냥 불씨만 살려 둬. 불씨 하나가 숲 전체를 태울 수 있어. 그냥 불씨 하나만. 그걸 살려 둬.

해낸 것 같다. 다행히도. 참 우라지게 복도 많지.


🔖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, 고독을 먹고 살면서 군중을 절대 그리워하지 않았으니까.

나는 위대한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위대한 책은 내게 관심이 없다.